곁들인 영화 :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요시다 다이하치 作
"후반부의 에너지가 좋았죠? 물론 싸움은 나쁘지만요. 저라면 교내에서서 그런 난장판이 일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았겠지만…정면으로 부딪쳐야만 깨지는 응어리도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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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가 전반적으로 린린이 할법한 생각과 말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말투 뿐 아니라 제가 익히 아는 린린의 ‘평범하게’ 착하고 정의로운 면모도 구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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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의 에너지가 좋았죠?
좋았냐는 말이 어떤 충동질 같아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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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부딪쳐야만 깨지는 응어리도 있는 거겠죠.
이 대사는 신청서에 적어 두었던 신텐의 최후(투신 자살)에 대한 복선이자 그리 선택하는 사유에 대한 메타적인 설명처럼 들립니다. 재미있는 연출입니다.
그리고 린린이 악의 없이 신텐이 억누르려는 충동을 ‘긁는’ 형태의 미묘한 역학이 어렴풋하게 드러나도록 적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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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이 우리에게서 번민이라는 멍에를 들어냈다. 시시함은 인간이 그토록 오래, 대대로 지켜내고자 했던 평화의 수동태인데 누구나 그 사실을 잊고 산다. 무엇이든 움직임을 방해받았다는 불쾌감은 진짜다. 갇혔다…고 고함치며 벽을 긁는다, 우리. 어디에? 흐르지 않는 하루에. 언제? 그곳에서. 질답이 엉망으로 꼬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조용히 해라. 왜? 살아가는 목적 비슷한 것을 말하는 인터뷰이들의 일관되게 글썽글썽 벅찬 표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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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이 우리에게서 번민이라는 멍에를 들어냈다.
‘우리’는 ‘번민이라는 멍에’-관성적인 고통에 얽메여 움직이는, 또는 그래야 하는 존재들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신텐들과 영화 속 학생들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멍에를 벗어나는 것은 달가울 만한 일인데, 후속 문장과 연계해 볼 때 ‘비일상’이 초래한 변화가 ‘평화’를 깨뜨렸다는 점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뉘앙스가 감지됩니다. 이를 통해 신텐이라는 캐릭터의 강박적일 정도의 경직성이 역설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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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함은 인간이 그토록 오래, 대대로 지켜내고자 했던 평화의 수동태인데 누구나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시시함 : 평화의 수동태’ 라는 표현이 인상 깊습니다.
이 문장에서는 신텐의 자기억압적 태도와 폭력적일 정도로 보수적인 성격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누구나’에 속하지 못 하므로 여전히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당연히 ‘누구나’에 속하므로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고 느끼고 있는 신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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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움직임을 방해받았다는 불쾌감은 진짜다. 갇혔다…고 고함치며 벽을 긁는다, 우리.
‘멍에를 들어내는’(=더 자유로이 움직이게 함, 갇히는 것의 반대 심상, 해방) 행위에 대한 불쾌감을 느낀 것이므로, 표면적으로 신텐이 방해받은 것은 ‘움직임’이 아니라 ‘멈춤-평화의 수동태’인데 그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순을 통해 이질감을 자아내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신텐의 ‘억눌린 자아’로만 읽히던 문장이 ‘우리’라는 표현 이후 ‘억눌렸을 뿐만 아니라 ‘나’라고 확신할 수 없이 소란스러운 자아의 감각’으로 확장됩니다.
이는 ‘헛것(귀신)을 보거나 빙의, 섬망 등을 겪는’ 신텐의 설정과 정신과 신경의 불안정성을 압축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렇게 치고 들어오는 연출의…뭐랄까…감촉(?)이 정말 좋았습니다. 좁은 공간을 부술 것처럼 들끓으며 높아지는 압력과 밀도 따위가 떠올랐습니다.
+) ‘우리’가 영화 속 학생들도 포함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다른 요소가 작품 내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마카세로 선택된 영화와 이 작품 간의 연관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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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흐르지 않는 하루에. 언제? 그곳에서. 질답이 엉망으로 꼬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하라’면서 무시하고 싶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번민을 유도하는 출처 모를 질문들이 몰아치고, 신텐이 그에 무심코 대답하는 모습입니다. 자아의 내면인지 외면인지 모를 어딘가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연출이 정말 재미있어요-`♡´-
파란 글씨 부분의 뉘앙스가 몹시 정적이고 경직되어 있음에도 혼란스러운 점이 좋습니다. 프로필에 적혀 있는 설정과 가비 님의 캐릭터 해석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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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가는 목적 비슷한 것을 말하는 인터뷰이들의 일관되게 글썽글썽 벅찬 표정 때문에.
영화에서 이렇게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까요?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삶’을 사랑하는 태도에 대한 캐릭터의 부정적인 반응이 느껴집니다. 좋은 연출을 통해 캐릭터를 어필하고 연출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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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텐은 인간이 그토록 오래, 대대로 지켜내고자 했던, 시시할 정도로 통속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을 억압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평화가 자신에게 진정으로 안락하게 느껴지지 않고, ‘삶’을 애틋하게 숭배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도 공감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내면의 ‘부적절한’ 불쾌감에 ‘조용히 하라’며 말 그대로 묵살합니다.
자연스레 체득하지 못 한 ‘정상성’을 실천하려 노력하면서도 끊임없이 불화하는 모습이 이 캐릭터의 코어를 잘 드러내는 문단이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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